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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 창비

 

  요셉은 그것이 노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근대사의 천박함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노인들은 한번도 개인이 되어본 적이 없었으며 지금도 단체생활을 하고 있었다. 더 큰 비극은 뒤늦게 개인의 고유성에 눈떠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모른다는 거였다. 노인들한테 자기가 젊었을 때 지금 나이의 노인들처럼 뒷방늙은이로 살라고 하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제 노인들은 모시적삼에 부채를 쥐는 대신에 몸에 달라붙는 운동복에 산악자전거를 끌거나 쌘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러 까페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여전히 쩌렁쩌렁 큰 소리로 전화를 하고 순서를 무시하고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모욕을 주고 여성을 깔보고 다른 손님들에게 공경을 요구할 뿐이었다.

  요셉은 요즘처럼 사회가 젊은이한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한편 모든 면에서 젊음을 의식하며 돌아가는 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 노인들의 질투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시절 살아남기 위해 자기 스스로 굴복했던 권위에 대한 권위적인 방식의 복수인 셈이었다.

 

 - 태연한 인생, 은희경, 창비,  204쪽

근래들어 가장 궁금했던 문제

'어째서 이리도 무례한 노인이 많은가?'

에 대한 촌철살인의 답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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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 윤고은 / 문학과지성사

 

 

 

 

혼자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어폰에 누군가는 휴대폰에 의지해서 밥을 먹을뿐.

 

혼자 무엇인가를 할 줄 아는게 어른스럽다고

그걸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젠체했었지만,

결국엔 나도 외로운 인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밥먹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다니'하고

자조하기 보다는,

'누구와 이 기쁜 시간을 함께 할까'하고

두근거려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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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양창순 / 센추리원

 

 

'건강한 까칠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했다.

 

'누구나 그렇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숙제들은 여전하지만.

거절받을까봐 미움받을까봐 걱정하느라 속만태우고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삼켜버리는 내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압력을 잘 조절해서 건강해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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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 마음의 숲

작가는 말한다.

" 왜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할 수 있는 일을 매일하자

그럼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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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것, 박완서 / 마음산책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라는 조금은 가슴 먹먹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짤막하게 쓴 글들과 문답을 엮어놓은 책이다.

 

그 중에서 내가 고른 한 컷은,

초등학생이 보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인데 내용은 위와 같다.

 

이 부분을 읽는데 마치 작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러니 괜찮다. 너는 너만의 책을 쓸 수 있어"라고.
"너의 경험을 녹여내면 그게 바로 너만의 글이란다"라고..

 

그러니 용기를 내어 작가의 꿈을 계속 꿀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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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출간 30주년 기념강독회 『침묵과 사랑』출판기념회

 

 

 

 

01.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하던 중학교 시절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이 부모였고, 그런 부모를 부정하고 싶기만 하던 나였다.

 

' 좀 더 도시에서 태어났더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좀 더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엄마아빠 또래의 성공한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수도 있었을텐데 .. 충분히 그럴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고 나서였다.

사회구조가 그러했었다. 아니 사회구조가 아직도 그러하다.

난장이의 자식은 '난장이의 자식'으로 살수밖에 없게하는 환경.

 

 

02.

영호와 영희는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지금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곁에 또 존재한다.

 

 

03.

우리는 평온하다.

우리세대에겐 피의 역사가 부재한다.

 

 

04.

조세희 선생님은 약을 드셨다. 많이도 힘겨워보이셨다. 그렇지만 말씀하셨다.

나이들어 주책이라 하시며 멋쩍어하셨지만 그 눈은 분명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하셨으며, 그 말 속에는 후대를 향한 강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훗날에는

선생님께서 집회현장을 찾아다니시며 직접 찍으신 그 사진들을 '이 사회의 아직도 많은 영호와 영희'에게 주는 책에 싣고 싶다고 하셨다.

 

 

05.

" 선생님께서는 왜 이 소설을 쓰셨나요? "

"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써주길 기다렸지만(웃음) 누구도 쓰지 않았기에.

내가 쓰지 않으면 누가 기억하고 기록하나 해서 .. "

 

 

06.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손가락질 말라고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기에 나온 것이라고

우리에게 집회장소란 아직도 부재할 뿐이기에 다들 쏟아져나오는 것이라고 ..

 

우리 세대를 믿고 있으며,

결코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시던 조세희 선생님의 말씀과 그 표정이 ...  잊혀지질 않는다.

 

 

 

 

 

 

사람이 말을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그 말을 지키고 행동으로 옮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의 평생을 이 세상의 많은 '난장이'들을 위해 글을쓰고, 행동하신 조세희 선생님이 오래도록 존경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한 후대를 향한 애정의 당부와 믿음까지도 ..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오는 그 길이 결코 가볍진 않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

 

 

 

언젠가 조세희 선생님을 뵈면 말씀드리고 싶었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저의 부모님께 머리숙여 죄송하다고 .. 그 분들을 한심하게 여긴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신 건

그건 선생님의 책이었다고 .. 선생님의 말씀이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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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의 씁쓸함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아침부터 신경숙 작가의 표절의혹으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은 그녀의 소설을 읽을때면 어릴 적 할아버지댁에서의 추억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딸기가 아닌 산딸기, 체리가 아닌 앵두.

할아버지는 소에게 먹일 꼴을 베러 가시면 나를 위한 산딸기나 앵두 한주먹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저 멀리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오면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할아버지가 "우리 보래미 어딨나" 하시길 기다렸다가 고개를 내밀면

말없이 내 손에 쥐어주시던 빨간열매들.

경운기를 운전하고 온 할아버지 손냄새, 열매를 싸기 위해 사용했던 면포의 세탁비누냄새 같은 것들이 뒤섞여있었고

할아버지의 체온을 쥐고있는 그 열매가 난 참 좋았다.

그리고 그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신경숙 작가의 소설이 참 좋았다.

 

 

내 경험과 삶의 깊이가 일천하여 작가를 비난하는 것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내 친구 B가 말하듯 '예술가의 표절은 그의 작품을 보고 읽고 들으며 감흥에 젖었던 감상자의 마음에도, 기억에도 흠을 낸다'는 말에 깊이 공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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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레오 인터뷰에 대한 단상

http://ch.yes24.com/Article/View/28426

 

대학에 다닐때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을 못다녀왔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실직으로 더 그러했고

과외 알바로 학비, 용돈을 벌어쓰던 나에겐 사치같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어학연수부심을 부리는 애들이 참 싫었다.

어학연수 안다녀오고 취업이 되겠냐는둥 대기업의 기본 스펙이 이건데 없으면 어쩌려고 하냐는둥..

인터넷 취업관련 카페에서도 난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은 '기본스펙'이 없는 인간 취급을 당했고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취업하면 니들 어떡할래? 하는.

 

결론은?

어학연수는 못갔지만 토익 고득점받고 학점 고득점으로 졸업했고

공공기관에 취업해서 잘먹고 잘산다.

큰 돈을 벌진 못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강레오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아마도

"서양음식을 배우려면 그 지역에 가서 본토 사람들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더 잘 먹으면서 공부를 해야 해요. 한국 음식을 아예 다 끊고 살아야 될까 말까인데. 한국에서 서양음식을 공부하면, 런던에서 한식을 배우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러니까 본인들이 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튀는 거예요. 분자요리에 도전하기도 하고. "

이 부분인데, 누군가(최현석)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주기 때문이다. 유학부심같은 느낌이 드니까.

(뭐 모든 유학이 비싼 돈들여 하는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생면부지의 땅으로 떠나야만 그 꿈의 값을 인정받을 수 있는건가.

한국에서의 피나는 노력으로 셰프란 꿈을 이룬 이들에게 시작점이 한국인 이상 글렀다는 식의 저 인터뷰는 심히 거슬린다.

 

 

칼럼리스트 황교익씨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최현석 셰프는 방송에서 자신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정확히 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바,

강레오씨의 인터뷰는 최현석씨에게나 즐겁게 방송보던 사람들에게나 상처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유학은 가지 못했으나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사람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이에게

'커갈 수 없다'는 악담을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덧붙이는 hoer****님의 공감백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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